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솔직함, 나를 위한 무기인가?

옷거리 2023. 10. 31. 00:50

 솔직함. 어디선 무기라던데. 나는 왜 그 무기 날이 나를 향해 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지. 글을 쓰는 건 미래를 파는 거라 말한 적 있다. 오늘 나는 나를 팔았다. 팔고 난 후 내 감정을 적어보려고 한다.

 

 마감날이 다가왔다. 빠르게 쓸 수 있는 건 내 이야기밖에 없었다. 노트북 앞에 앉아 주저리주저리 써 내려갔다. 타자를 누르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. 쉬웠다. 항상 머릿속에서 드문드문 떠오는 단어를 서술어로 완성하면 되니까. 배설하듯 썼다. 사람들과 대화할 때 거치는 체 따위는 없었다. 내가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, 말이 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. 이게 받아들여질지도.

 

문득 직감했다. ‘이거 안 되는데타자기를 치는 손에 후회가 묻었다.

 

 그러나 마감 시간이 4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. 이 얘기 저 얘기 술에 취해 내 맘대로 입이 움직이는 것처럼 썼다. 어쩔 수 없다고 위안하면서. 어쩌면 이 정도를 펼치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며 마음을 쓸어내렸다. 빙산의 일각의 일각 정도 보이는 게 뭐 어때. 판단 회로가 잠시 멈췄다. 덕분에 노트북 앞에 앉은 지 3시간 만에 마감했다.

 

 재앙은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여주면서 시작됐다. 솔직한 글이라 좋다고 말했다. 보여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게 기분이 구렸다. 글은 나를 보여준다며 그는 인생에 대해 말했다. 글을 대변하던 나는 언제부턴가 내 인생을 대변하듯 열변을 토했다. 내가 생각하는 것을 내 입으로 다시 말했다. 글을 쓰면서 직감한 안 되는데보다 더 안 됐다. 공개해선 안 되는 글이었다.

 

솔직한 게 가장 좋다고? 솔직함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무기라고?

 

 그런 되도 않는 말은 하지 마라. 솔직한 게 좋다면 왜 나는 솔직한 글을 남에게 보여주고 기분이 안 좋은 거지? 뒷담화하고 나면 죄책감에 기분이 안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. 뒷담화를 한 것도 아닌데 왜 솔직하고 나면 더러운 기분이 드는지. 옷을 벌거벗은 것처럼 수치스럽다. 난 왕도 아니고 지나가는 백성인데. 치부를 들킨 사람처럼 도망치고 싶었다. 벌어진 옷을 손으로 잡아 닫고 뛰쳐나갈 수 있다면. 시간을 되돌려 마감날에 마치지 못하고 혼이 나더라도 쓴 적 없는 글로 만들고 싶었다. 일기에 쓸 글을 왜 썼을까.

 

 역겨운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. 아주 솔직한 마음이 그렇다. 더럽고 역겹고 괴롭다.

 

 가끔은 솔직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. 어쩌면 개운할지도 모른다고. 누군가와 더 가까워질 방법이라고. 내가 여전히 놓치고 있던 열쇠일 것만 같았다. 오늘 다시 한번 느꼈다. 여전히 준비되지 않았다. 면역체계가 완전하지 않은 신생아다. 오늘 일로 조금은 면역력이 생길까.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.

 

 그나마 보여줄 수 있는 사람에게 보여준 걸 다행이라 여긴다. 그나마 덜 힘들고 덜 괴롭다. 솔직한 글은 이후 다듬어질 것이다. 어깨 정도 드러내는 노출 정도로 마무리하려 한다. 언젠가 나도 솔직해질 수 있을까? 이 역겨움을 견딜 수 있을까. 엄마에게도 완전히 솔직하지 못한데. 솔직함이 무기라는데. 어느 날 그 무기를 꺼내면 내가 아닌 곳을 향할 때가 오겠지. 내게 유용한 날이 올 거라 그렇게 기대하겠다. 아직은 아닌 걸 오늘 다시 깨달았다.

 

기록이 나의 기억을 배신할까 다시 말한다. 역겹다기보단 살이 벗겨지는 듯한 기분이었다. 살이 한 겹씩 벗겨져 내 몸이 드러나는 기분. 따갑고 아프고 창피했다.